[이 아침에] 이 세상은 너와 나의 공존이다
모처럼 남가주에 비가 내렸다. 비 온 후라 뒷마당에 피어있는 초목들이 싱그러워 보이고, 꽃들도 아름답다. 해맑은 햇살은 더욱 정답다. 오랫동안 건조한 탓에 한동안 대형산불의 재앙이 남가주 곳곳을 휩쓸었다. 그런 때문인지 추운 겨울인데도 이번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츠리게 하기 보단 오히려 활짝 펴게 해준다. 혹시 꺼지지않고 남아 있을지도 모를 화마의 불씨마저 사라질 거라고 안심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날씨나 환경에 국한되겠는가. 요사이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는 기후 못지 않게 불안하고 염려스럽다.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부의 첫 과제가 천만 명이 넘는 불체자들의 추방 문제라니 춥고 걱정스럽다. 내 일이 아니니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남의 고통 앞에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떠나온 조국의 정치도 불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염려스럽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 명목으로 구속되어 재판중이니 이보다 더한 재앙이 없다.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듯 위협한 최근 남가주 산불 같은 형국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무섭던 산불도 진압되고, 정치적 갈등도 정리될 것이지만, 재앙들이 남기고 갈 아픔의 흔적과 상처는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몸살을 앓게 할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은 ‘너와 나’의 공존이다. 싫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고, 좋다고 해서 제멋대로 자기 생각 만으로만 살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말이다. 마치 우리 ‘몸’의 각 기관과 조직들이 함께 어울려야 건강을 유지하듯, 우리 사회도 개인과 각 단체가 잘 소통하고 협력해야만 평화를 이룰 수 있기에 말이다. 우리 삶에서 많은 문제의 해답은 그래서 ‘다양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달려있다. 뒷마당의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가 똑같은 한가지 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온갖 종류의 꽃들이 ‘함께’ 어울려 피어 있기 때문 아닐까.만약 정원에 자기가 좋아하는 한가지 꽃만 피어 있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마치 오래 보아온 집안의 가구처럼 더 이상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형태의 다양한 존재들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생각과 개성을 지닌 이웃이 있기에 삶이 더욱 신비스럽고 재미있고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성적성향이 있기에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다양성의 축복 아닌가. 외모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각’ 또한 정원의 꽃처럼 각양각색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이 다름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서로 다른 ‘다양성’의 의미다. 하여,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는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남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로 비록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이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대신, 상대방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긍정마인드에서 나온 배려로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개방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배려로 상대방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이나 사회 안에서도 많은 갈등이 해소되리라 믿는다. 이건 살면서 터득되는,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상식’이다. 실제로 개인이나 단체의 갈등과 반목은 많은 경우 서로 다른 생각을 ‘흑/백’논리로 이분화시키려는 유혹에서 기인한다. 흑백논리 같은 이분법 사고가 개인과 사회에 만연되면, 서로 생각이 인정받지 못하기에 서로 비난하고 적대시하며 ‘패거리’현상이 벌어 질 수밖에 없게 되어간다. 그 예가 바로 우리가 떠나온 조국의 가슴 아픈 현재 정치 현안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적 갈등의 피해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며 서로 상대방을 배척하는 당사자들에게만 국한되지않고, 함께 사는 모든 국민 몫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이건 정말 너무나 참기 힘든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남을 인정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의 상식이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꽃처럼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오늘도 간절해진다. 김재동 / 가톨릭 부제·의사이 아침에 공존 대신 상대방 정치적 갈등 사회적 갈등